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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현주소, 그 현장을 가다
등록일 :2010-09-08/작성자 :관리자/조회 :2116


한국교회의 현주소, 그 현장을 가다

백제의 고도 부여.
충청남도 남서부에 위치해 있으며,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는 예부터 전통문화의 고장이자,
삼국 중 가장 뛰어난 문화를 꽃피워, 그 찬란한 문화를 일본에 전해
아스카문화의 원류가 되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1천3백여 년 전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부여에는
발길 닿는 곳마다 문화유적이 산적해 있다.
현재 부여에는 1점의 국보와 9점의 보물, 11개소의 사적이 있다.

국보로는 「정림사지5층석탑」(제9호)이 있으며,
또 보물로는 정림사지석불좌상을 비롯, 당유인원기공비, 보광사중창비, 부여석조, 무량사 극락전, 석등, 5층 석탑, 그리고 임천면 대조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 장암면 소재의 3층석탑등이 있다.

무엇보다도 서역이나 중국에서 앞선 불교문화를 수입,
일본에 전했던 백제의 문화유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부여에는
불교문화 유산이 국보 및 보물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백제 멸망 후 1천7백여 년이 지난 지금의 사정은 사뭇 옛날과 달랐다.
현재 부여군에는
사찰이 33개, 신자수가 6천3백여 명인데 반해,
교회수가 1백60여개, 신자수가 1만6천5백여 명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부여군은 「더 이상 복음전파에 불교의 영향을 받지 않을 만큼」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어 있는 것이다.
웬만한 자연부락 마다 교회가 없는 곳이 없다.

부여군에 기독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97년 전인 1896년경으로 추정된다.
부여군에서 처음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교회는 임천면 칠산리에 있는
칠산침례교회(조용호목사)이다.

지난 2007년 11월부터 이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조목사는 교회역사에 관심이 많다.
조목사에 의하면 ‘이곳에 처음 선교를 시작한 것은 지금까지
캐나다 선교사 펜위크로 알려 져 있으나, 그는 당시 이곳에 없었으며,
이곳에 처음 교회를 세운 이들은 다름 아닌 엘라씽기념 선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이었다’고 한다.

엘라씽선교단체에서는
1895년과 1896년 두 차례에 걸쳐 폴링선교사부부와 여선교사 가들라인,
그리고 스테드맨선교사부부와 여선교사 액클스, 엘머양을 한국에 파송하였다.
이들은 서울(혹자는 부산이라고도 함)에 체류하면서 선교사업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서울은 이미 다른 선교회가 정착해 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 미선교지역이 많았으므로, 그들은 다른 선교지를 물색하던 중
충청도로 선교지를 정했다.
충청도에서도 북부지역을 다른 선교회의 선교지구로 지정,
이들은 강경지방과 공주를 선정하여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들의 선교활동은 활발히 이루어져
1899년 한국에서 최초로 침례교인을 탄생시켰다.

여기서 부여 기독교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처음 이들에게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금강에서 침례를 준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군산에서 선교하고 있던 남장로회 소속 부위렴선교사였던 것이다.

그것은 스테드맨 선교사가 안수 받은 목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있었던 일이었다.
이때 최초로 침례를 받은 자는 홍봉춘, 장교환, 김치화, 고내수, 김도정, 최춘명 등 여섯 사람이었다.

1899년 장로교 선교사에 의해 침례교신자가 태어나던 해,
남장로회선교사들은 연차보고에 ‘장로교회 선교부는 사실상
충청, 전라 양도 중에서 ...증원파송이 없으므로 인하여 충청도는 침례교회
형제들에게... 넘겨줄 셈입니다’라고 보고 했다.

이 보고서가 암시하고 있듯
엘라씽기념선교회는 이 지역에서 많은 신자를 얻고,
교회의 부흥을 가져왔으나 타교단선교사들의 도전 또한 만만치 않았다.

결국 재정난과 타 교단 선교부의 제동에 견디지 못한
엘라씽선교회는 1902년 한국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의 철수는
곧 부여지방 선교 단절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침례교 선교팀이 일본으로 철수할 때 첫수침자 중의 한명이었던
고내수씨가 침례교 선교사의 안내로 군산에 주재한 무위렴선교사의 협조를 얻어
양화면 초왕(왕골)에 교회를 세웠던 것이다.

고내수씨의 열심으로
1904년에는 교회가 급성장하여 3백여 명이 모였다고 한다.
고내수씨의 차남 고문중씨는 1906년에 공주성경학교(교장:편위익,옥립선교사)를 졸업하고 다년간 장로교회에서 교역하였다.

이후 부여군에는 활발한 선교활동이 이루어져
1904년 홍연교회, 1905년 청포(앙개), 옥곡(옥실)교회가,
1906년에는 오덕(수침), 가양(가양골), 지석(괸돌), 1909년에는 장산(성산)교회등이 세워졌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초기 기독교가 이처럼 성장한 이면에는
오늘날도 한국교회의 문제가 되고 있는 개인주의,
혹은 이기주의가 발동했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실례로 세도면 장지리에 거주하는 김상권씨가
모친상을 당해 모친의 묘를 외가인 양화면 초왕리(왕골)의 타인 산에
암장했었는데 항시 그 산주의 보복을 두려워 하던 중 초왕교회 고내수씨의 말에
예수를 믿으면 서양선교사의 세력을 의탁할 수 있다는 말에
예수를 믿기를 작정하고 초당교회에 출석했다는 것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충남노회사에 기록된 서광오장로의 증언이다.
당시 서양 선교사들의 입김이 얼마나 센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군수들조차 이들 서양 선교사들의
방문을 받으면 ‘버선발로 뛰어나가 영접한다’는 말까지 있었던 시절이었다.

이러한 예는 초왕교회나 장산(성산)교회 뿐만이 아니다.
홍산면 홍양리에 세위진 홍양교회는 홍산지방에서 씨족간의 대립에서
선교사의 세력을 의지하기 위해서 임천면 옥곡(옥실)교회에서
남장로교 선교사(부위렴)를 만나 홍양리로 초대하여 예수 믿고 홍양교회를 세웠다.(이한승장로증언) 초기한국교회 교인들의 신앙동기야 어떠했든 간에
교회는 날로 늘어났다.

앞에서 침례교회가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장로교회에서 그 묘목을 가꾼
부여군 기독교회는 현재 160여개로 늘어났다.
지난해까지 부여군에는 14개교단 164개의 교회가 연합회에 소속돼 있었다.

이교회들을 교단별로 보면,
한국기독교장로회가 37개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기독교 한국침례교회가 29개이다.
이밖에도 부여군에는 기독교대한 성결교회가 24개,
대한 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회가 22개, 합동측이 14개,
예수교 대한 성결교회가7개 있으며, 나사렛교회 3개, 하나님의 성회 3개,
하나님의 교회2개, 그리스도의 교회, 오순절 성결교회, 예장성합교회,
하나님의 성회(삼성측)이 각각 1개가 있다.

이처럼 부여군은 인근 타군에 비해
선교지 분할 정책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다.
그것은 부여군이 위치한 자연적인 지리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충청남도 남서부에 위치한 부여군은 동쪽으로 논산군,
서쪽으로 보령군과 서천군 북쪽으로 청양군과 공주군,
남쪽으로 전라북도 익산군과 접경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충청남도의 북동에서 남서부로 이어진 차령산맥이 군의
북서쪽을 지나면서 보령군과 서천군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또한 금강이 군의 동부를 관류하다가 남쪽 익산군과 군계를 이루고 있다.

초기 부여군 기독교전래는
육로보다는 금강을 따라 이뤄진 것을 알 수 있다.
부여군에서 처음 세워진 칠산교회등 많은 교회들이 금강주변에 있으며,
부여읍 남서부에 위치한 규암나룻터는
예부터 서천, 장항, 강경등지를 왕래하는 나룻배의 기착지였다.

이 나룻터는 1968년 국도를 연결하는 백제대교가 개통,
교통의 편리함을 말해 주고 있다.
현재 부여군의 교통은 대전에서 장항을 연결하는 국도가 군의 중앙을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으며, 부여읍을 중심으로 인근 공주, 예산, 장항, 임천에 이르는 지방도로가 뻗어 있다. 한편 철도는 호남선의 논산역이나 서쪽 장항선의 판교역을 거쳐야 함으로 이용이 불편하다.

한편 부여읍과 규암면, 은산면, 외산면등 1읍 15개면으로 이뤄진
부여군기독교는 교단뿐만 아니라 지역별로도 고도성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말 현재 부여군 문화공보실에서 파악한 자료에 따르면,
부여읍에 23개교회가 있는 것을 비롯, 규암면 15, 은산면 13, 외산면 8,
내사면 8, 구룡면 7, 홍산면 10, 옥산면 6, 남면 9, 충화면 9, 양화면 12, 임천면 15, 장암면 12, 세도면 11, 석성면 7, 초촌면 6개 교회등 모두 1백69개교회가 있다.

이는 부여군기독교연합회 소속 1백64개교회보다 5개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들 5개 교회는 곧 통일교 등 이단교회임을 말하고 있다.

각 면별로 살펴본 교회현황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 교회가 세워진 임천면과 양화면, 그리고 당시 교통의 요지였던
규암면에 비교적 다른 면보다 많은 교회가 세워졌다.
이중에서도 규암면에는 15개의 교회가 있는데,
이는 임천면과 양화면에 이어 규암면에도 비교적 일찍
복음이 전파됐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실제로 규암면에는 한강이남에서는 처음으로 성결교회가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규암면 규암리 90 언덕위에 예수교대한 성결교회 규암교회(담임=박상규목사)가
창립된 것은 1912년 7월 26일.
당시 이곳에 살던 김성규씨가 서울에 올라가 전도 받고
고향에 내려와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한편 부여군에 감리교가 선교를 시작한 것은 1921년이며,
그 밖의 교단은 50년 이후이거나 70년대 이후이다.

장로교와 침례교, 감리교, 성결교등
거의 한국의 모든 교단이 비교적 고른 성장을 보이고 있는
부여군기독교는 연합사업 또한 인근 타군에 비해 비교적 잘되고 있다.

부여군기독교연합회 역사는
6.25전인 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홍연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임달호목사가 초대 연합회장을 맡았다.
1906년 옥산군 홍연리에서 태어난 임목사는 지역사회발전에 이바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장과 기장이 나눠진 것에 대한 가슴 아프게 생각’하여
75년 전국에서 처음, 부여군에서 예장. 기장통합작업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비록 여러 가지 사정으로 통합작업은 실패했으나, 이러한 시도는 지금도
부여군기독교연합사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42년이란 오랜 역사를 가진
부여군기독교연합회는 ‘군내 각 교회가 교파를 초월하여 친목을 도모하고,
회원 각자의 신앙발전 향상과 군내 전역의 복음과 운동을 목적’으로 매년
강변집회와 부활절연합예배 및 이단종파세미나, 국가와 나라를 위한 기도회등을
개최하며 연합사업을 도모해왔다.

특히 매년 8월 둘째 주 백제 대교가 있는 KBS송신소
뒤쪽 백마강변에서 갖는 강변집회는 부여기독교연합회가 가장 비중을 두는
행사였으나 현재는 교단별로 돌아가며 교회에서 실시하고있다.
또한 매년 부활절에는 읍에 있는 교회들이 중심이 돼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고 있다.

한편 부여군에서는 지난 79년 부여 YMCA가 창립됐으나,
현재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선교프로그램을 담당할 총무가 없어
활발한 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관광객들에 대한 선교정책,
농민들에 대한 선교정책, 청소년, 노인들에 대한 선교정책은
어느 교회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특히 이 지역 농촌목회자들은 농촌선교에 대한 어려움만큼은
바로 인식하면서도 재정부족,농촌인구이동. 고령화, 농촌목회자들의 의식결여,
목회자들의 잦은 이동 등으로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부여지방선교는 초창기 불교적인 영향으로 어려움이 많았으나.
지금은 상당히 나아졌다’고 말했다. 그동안 부여군에는 교회가 많이 생겨났으나. 대 사회적으로 리드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는 교회가 지역사회에서 그만큼 제 역할과 사명을 다하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말이기도 하다.

부여군 인구는 현재 13만 명이며
그중 기독교인은 1만6천여 명에 이르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그리스도 예수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90%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위한 구체적인 선교전략이 아쉽다.
교회가 사회를 계도하고 권위를 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들 속으로 들어가 누룩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줄의견[1]

  • ▶원형연

2015-03-05 20:36:22

내용은 길어서 생략하고 십자가 종탑이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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